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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다크투어] 11화 우크라이나 전쟁과 닮은 보스니아 전쟁(1)

by 한실장 세상 2022. 8.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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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 제네바 협약을 무시한 민간인 학살 보스니아 전쟁

제네바 협약이란
19세기 중반부터 인류 생명과 안전을 위한 제네바 협약이 만들어진다.

협약 1. 1864년
육전에서 군대의 부상자 및 병자의 상태 개선에 관한 것

협약 2. 1906년
해상에서 군대의 부상자, 병자 및 조난자의 상태 개선에 관한 것

협약 3. 1929년
포로의 대우에 관한 것

협약 4. 1949년
전시에서 민간인 보호에 관한 협약

 

현재 일어나고 있는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전쟁 중 2022년 7월 19일 도심에 있는 종합쇼핑몰에 미사일을 쏘고 어린이 포함 25명이 사망하고 100여 명이 크게 다쳤다. 러시아군이 우크라이나 수도 키이우에서 후퇴한 뒤 침공 기간 동안 끔찍하게 살해당한 민간인 시신은 약 400여 구로 모두 손발이 뒤로 묶인 상태였다.

 

27년 전 발칸반도에서 이와 매우 닮은 민간인 학살 전쟁 중 1992년에 발생한 보스니아 전쟁이다. 25만명에서 30만 명의 민간인이 학살당하고 수도 사라예보는 1,425일 동안 봉쇄되어  44개월 동안 매일 평균 100여 명의 민간인이 사망하였다.

 

 

 

보스니아 전쟁은 2차 세계 대전 이후 일어난 최악의 인종청소, 최악의 참상이라 불린다.

 

 

 

 

2. 유고슬라비아 연방공화국의 건국과 해체 

제2차 세계대전 후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건국된다. 다양한 민족과 종교가 섞인 유고연방에 강력한 카리스마를 가진 발칸반도 초대 대통령 요시프 브로즈 티토에 의해 뛰어난 외교 정치와 리더십으로 엄청난 경제 발전을 이룩한다.

 

1970년 대 석유 파동으로 인해 세계 경제가 힘들어지면서 자연스럽게 민족주의가 깨어나기 시작한다. 당시 다양한 민족이 섞여 있던 유고슬라비아를 절대적 카리스마와 리더십으로 통합하여 하나로 묶었던 대통령 티토가 1980년 5월에 사망하면서 더 좋지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유고슬라비아는 혼란에 빠지고 그 사이를 틈타 세르비아 대통령이자 일명 발칸의 학살자라 불리는 슬로보단 밀로셰비치가 나타난다.

 

슬로보단 밀로셰비치는 하나로 묶여있던 유고슬라비아에 슬로베니아와 크로아티아에 대한 반감을 부추기면서 세르비아 민족주의를 주장한다. 1990년대에 들어 세르비아 중심 체제를 구축하자 여섯 개의 유고연방 국가들이 반발을 하기 시작하고 연방 탈퇴를 선언한다.

 

 

 

가장 먼저 독립을 선언한 곳은 1991년 6월 슬로베니아로 슬로베니아계 88%, 세르비아계 2.4%의 민족이 살고 있었고 세르비아계가 적었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독립을 할 수 있었던 것이다.

 

그다음으로 크로아티아계 78%, 세르비아계 12%의 크로아티아가 독립을 선언하지만 약 60만 명의 비중을 차지하던 세르비아계 민족은 크라이나 세르비아 공화국을 설립한다. 이것을 계기도 세르비아는 크라이나 세르비아 공화국에 전폭적인 지원을 하며 크로아티아를 공격하고 전쟁은 1991년 3월 ~ 1995년 11월까지 계속된다.

 

1991년 북마케도니아가 독립선언하고, 이어서 세르비아, 보스니아, 몬테네그로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1992년 유고슬라비아 연방은 완전한 해체가 된다.

 

 

 

다른 국가와는 달리 보스니아의 민족 분포도는 세 개의 종교와 세 개의 민족이 골고루 섞였기 때문에 갈등이 생길 수밖에 없었다.

  • 녹색 : 이 이슬람교를 믿는 보슈나크인 거주 지역 (43.5%)
  • 빨간색 : 정교회를 믿는 세르비아인 거주 지역 (31.2%)
  • 파란색 : 가톨릭을 믿는 크로아티아인 거주 지역 (17%)

보스니아가 독립을 선언하면서 그 안에 세르비아인들은 스르프스카 공화국을 설립하고 라도반 카라지치가 대통령이 된다.

 

 

 

3. 세르비아의 보스니아 사라예보 침공

1992년 4월 5일 스르프스카 공화국의 1만 3천여 명의 민병대 중화기, 기갑전력 등의 완전무장을 하고 보스니아의 사라예보로 진군한다. 

 

사라예보를 완전 포위 1996년 2월 29일까지 1,425일 동안 학살을 일삼는다. 그게 가능했던 건 사라예보는 산악지대로 몇 군대의 길목만 차단하면 그 누구도 들어오지 못하고, 나갈 수도 없는 지형이었다.

 

산 위에서 무차별 포격을 하고, 높은 건물에 저격수를 배치해 어린아이, 여자 구분 없이 학살한다. 약 10만 명의 사라예보 시민은 거리로 나와 굴복하지 않겠다며 평화시위를 하지만 세르비아 민병대는 이 역시 무차별 학살의 대상으로만 대했다.

 

시위대에서 가장 먼저 죽음을 맞이한 건 올가 수취치와 수아다 딜베로비치였으며 죽음을 맞이한 다리를 추모의 의미로 수아다와 올가로 이름을 바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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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다른 이름 로미오와 줄리엣이다.

연인이었던 세르비아계인 보스코와 보스니아계 아드미라가 이 다리 위에서 사망했기 때문이다. 사라예보를 탈출하려 하지만 저격수의 총에 맞고 보스코는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아드미라는 보스코에게 기어가 그의 곁에서 눈을 감는다.

 

세르비아 민병대는 높은 건물에 저격수가 배치되치하여 24시간 보스니아 민간인 저격 활동을 펼쳤는데 보스니아인들은 왜 계속 저격 구역을 돌아다녔을까 하는 의문이 생긴다. 그 이유는 관공서, 은행, 병원 등이 자리 잡은 경제활동 구역이었기 때문에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나가기 위해 어쩔 수 없이 저격수의 거리를 지나다닐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세르비아는 왜 궃이 민간이을 공격 했을까?

바로 비용 때문이다. 당시 세르비아는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를 상대로 전쟁을 벌이고 있었고, 효율적인 전쟁을 위해 사라예보를 포위하고 민간인들을 학살함으로써 공포심을 심어 항복을 유도하려고 했던 것이다.

 

2부에서 계속 됩니다.

 

2022.08.27 - [드라마를 즐기다] - [세계 다크투어] 11화 우크라이나 전쟁과 닮은 보스니아 전쟁(2)

 

[세계 다크투어] 11화 우크라이나 전쟁과 닮은 보스니아 전쟁(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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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지 출처 및 자료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티빙 세계 다크투어, 네이버 나무 위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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